아주 어릴적의 장래희망은 만화가였습니다. 스토리 작법은 꿈도 못꾸고 그림도 그릴때마다 조금씩 달라지는 그런 만화지망생. IT는 동네 형들 집에 가서 MSX 게임을 돌리는 롬을 본정도는 되었지만 이시절은 지금처럼 IT 기술에 능하지는 못했던 시절입니다.
그나마 1990년대초에 정부에서 XT/AT 보급 붐으로 밀어주던 초등학교 IT 교육 사업에 참여해서 GW-BASIC은 다루어보았는데 변수나 상수의 개념을 잘 그리지 못해서 친구가 만든 소스코드로 숙제를 해결하곤 했네요.
1994년에 아버지가 큰맘먹고 사주신 486SX를 받는 직후부터 본격적으로 IT에 입문합니다. DOS의 끝자락이던 시절과 거의 겹치죠. 남들은 MSX로 입문했다니 전 자랑은 아니지만, 나름대로 신중해서 IT 업계에서 일할 정도의 자질은 있던듯합니다. 그당시 더블스페이스를 무심코 설치했다가 기본메모리가 570KB 이하로 내려가서 게임실행에 지장이 있게 됩니다. 더블스페이스가 MS-DOS 6.0부터 추가된 기능이라 그런지 그당시 출장온 수리기능사도 기본메모리를 끌어올리지 못했네요. 수리기능사분이 돌아가시고나서 제가 직접 도전에 나섭니다. HELP 문서를 뒤지다보니 DEVICEHIGH 구문과 DOS=HIGH, UMB 같은 구문을 config.sys 파일에 기재하면 된다는 힌트를 얻고 더블스페이스 해제후 심지어 600KB 이상의 기본메모리도 얻게 되었습니다. 그때부터 깡이 생겨서 IT 기술에 눈을 뜨게 되죠.
이때 성향은 간단한 시스템 관리 / PC 조립/수리기능사 같았습니다. 모뎀도 스스로 설치해보고 해설서도 직접 발품팔아 내용확인하면서 배워보고… 그래도 가시지 않은 갈증은 프로그램이었습니다. 나도 프로그램을 만들고 싶었죠. C 책도 들여다보고, 비주얼 베이식도 들여다보고, 어셈블리도 들여다봤는데, 이해는 잘했는지 어셈블리어를 배우고 싶은 생각이 먼저 들더군요. 그러나 컴파일러를 못구해서 지지부진하게 책 두 권만 보고 눈팅만 했는데 오래전에 배운 BASIC 언어의 연장선상에서 비주얼 베이식을 구해 윈도우 95 환경에서 돌아가게 하고 싶었습니다. 헉 그런데 구문 형태가 GW-BASIC보다 어려운게 아닙니까. 이벤트 같은 개념도 이해는 되지만, 전체적인 관점에서 큰그림을 그려 이해하는게 잘 안되었죠. 그래서 직거래로 구한 비주얼 베이식 CD를 판매하게되고… (대신 포토샵으로 좋아하던 예능인 사진을 자켓에 끼워넣고 구입하신 분께 증정했다는 자부심은 남아있었습니다)
부모님이 사주실 능력이 있으셨어도 모뎀을 14kbps 정도로 되는 것으로 적당하게 구해서 설치했는데 조립에 눈을 뜹니다. TT선도 달고 방학때 죽치고 앉아 웹서핑을 했네요. 하이텔 PPP 서비스였습니다. 그때 객체지향 해설한 문서를 보게 되고 무의식중에 기억을 하게 됩니다.
그러나 C든, C++든, 어셈블리든 자바든 뭐든 컴파일러의 부재는 어린 중학생이던 저에게는 저멀리 산 같은 거대한 존재였을뿐이죠.
그러다가 2000년초에 오픈소스 활황으로 유닉스를 접하게 되면서 일단의 전환이 오게 됩니다. 그당시 알고 지내던 예능인 팬 형님들이 IT 전공이라, 영향을 받습니다. 특히 지금은 Netty 설립자로 알려지신 형님이 만드신 JSP 방명록을 HTML만 참고하고 PHP4로 포팅에 성공하면서 저도 제가 배운 프로그래밍 지식을 확신하게 되서 일대전환이 됩니다. (형님들께 진짜 감사드려야 하네요)
엔지니어분들도 유닉스 다루기가 어렵다고 하시던 그 시절에도 고2 정도의 저도 DOS 다루던 능력으로 적응을 빨리 합니다. Apache 웹서버, PHP4, MySQL/PostgreSQL 등을 연동하는 configure 옵션도 직접 줘보고, 정식으로 배운 것은 아니지만, sed/awk를 써서 OpenBSD 포트 운용시 미비한 것을 보완하는 스크립트도 짜보고… 등등으로 프로그래밍 경험도 일신하게 되죠.
하지만 웹프로그래밍은 솔직히 접근이 쉽지 않습니까. C나 어셈블리어보다는 배우기가 수월한데 요즘도 C는 연결리스트 정도 구현에 멈춥니다.
하지만 어떤 개인적인 일이 있게 되어 사진계로 전향했다가 한 5년전부터 다시 IT로 돌아오게 됩니다. 모바일 앱에 관심이 가서 자바 언어를 다시 들여다보게 되죠. 지금은 앱 한개 만들고 있는 중입니다.
제 성향은 지금 당장은 PC 조립/수리 기능사, 웹퍼블리셔, 초입 시스템 관리자 정도 같습니다. 물론 프로그래밍에 확신을 못하던 저 시절에도 게임 데이터를 HEX 에디터로 고친다든지, 윈도우 시작음, 종료음을 바꾸는 정도는 했지만, 리차드 스톨만이나 에릭 레이먼드처럼 유닉스라는 거친 황무지를 개척한 것도 아니고, 주커버그처럼 웹서비스를 발전시킨 것도 아니고, 워즈니악처럼 하드웨어 제작도 안하고, 시모무라처럼 물리학과 보안을 아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물론 2000년도 이후에 BSD를 다루면서 기술도 접하고 문서도 필요할땐 읽고 해서 지금은 https://shutterpress.info/pc 정도는 운용할 줄 알게 되었네요.
개인적인 사정으로 인해 글 기획력과 기억 리콜력이 하락해서 글을 많이는 못쓰는데 나름대로 잘할 수 있다는 생각은 합니다. 제 현재 능력 특성은 (1) 서술력이 있어서 일단 이해하고 글쓰면 CTO 같은 기분이 들게 할때가 많다 (2) 82년생 나이에 비해 실무 기술이 많이 없어서 실재로 들여다보면 현업 정도는 아니다 (3) 그래도 뇌만 최적이면 매일 공부하면 일정 수준은 쉽다. 이정도 같습니다.
요즘은 tDCS라고 해서 전류를 뇌에 흘려주는 기기를 써야 겨우 공부에 적합한 상태가 되어서 고생인데 그래도 IT를 할때가 제일 능률이 높고 행복한 것 같습니다.
재미없는 생활사지만, 이렇게나마 IT人으로서의 정체성을 지속하고 싶습니다. 남들처럼 꾸준한 이공계통으로 살아온 것도 아니고 실무 경험도 적고 프로젝트 참여도 못해봤지만, 스스로 고군분투해서 지금 정도는 되었으니 만족합니다. 비전이나 철학 같은 것은 이제 관심권에서 멀어지고 있네요. 그래도 제가 스스로 무엇인가 남들에게 보탬이 될 수 있다면, IT 관련 공부와 해설도 어느 정도 할 수 있는 일이라, 나름대로 심기일전하면서 하고 있습니다.
요즘 만드는 안드로이드 앱은 40% 정도 진행되었습니다. 그외 운영체제, 네트워크, 쉘프로그래밍, 스프링 진행중인데 전시되는 듯하지만 암튼 저에게는 소중한 경험으로 삼고 싶습니다. 제가 알게 된 것을 아낌없이 이해되기 쉽게 전달하는게 하나의 신조이자 목표가 되었습니다. 더욱 더 노력해서 훌륭하지는 못해도 세상에 누가 되는 사람은 안되고 싶습니다.
재미없는 생활사 이야기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만 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