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썰미와 스스로 사고하는 블로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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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다수의 우리들은 교육 기회가 없지만 않으면 다들 자신만의 사고를 하고 있습니다. 일하러 가서 업무를 해야 한다는 부담을 이겨내고, 내일은 무엇을 하고 휴일을 보낼지, 베프와 함께 무엇을 하고 대화할지를 생각하는 일상적인 성실성으로 사고하기도 하고, 좋은 사진이란 무엇인지, 케이팝이 인기를 끄는 이유는 무엇인지,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화음을 가진 아카펠라 그룹은 누구이고 이들의 노하우는 어떻게 배울 수 있을지와 같은 학문적인 성실성으로 사고하기도 합니다. 다시 말하면 다들 각자의 삶의 상황 속에서 고유의 생각을 하고 이를 욕구와 조율하기도 하고 인지적으로 의미 있는 실천을 하죠.

이를 하는 대략의 방향성과 해설 서술은 존재하지만, 인식적 주체들은 이를 천편일률로 하지 않고 자신의 삶의 방향대로 조금씩 다르게 변용하기도 합니다.

분석철학자들은 이를 가리켜 지향성이라고 하고 지향성은 각자의 삶의 양식에 따라 각기 다른 사용방식으로 나타난다고 합니다.

지향한다는 것 그것은 살아있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매시매초마다 하면서 존재하는 인식적인 개념이구요. 이로부터 살아있다는 것이 의미를 지니게 되죠.

이 지향성은 알게 모르게 어릴적부터 살아오면서 형성되는 무엇입니다. 어릴적에는 어른이 된 이후보다 아는 지식은 적지만, 인지과학자들이 말하듯, 학습의 전문가라고도 할 인식적 원리가 있습니다. 흔히 말하는 눈썰미가 좋다고 할때처럼 특별히 정확한 해석을 안접해봐도 성공적으로 인지적인 작업에서 두각을 나타내기도 하고 인간이라면 누구나 하는 기능을 배우기도 하죠.

어릴적이라고 했지만 사실 배움에는 나이가 필요없습니다. 다만 공부할때 접한 현상에 대해 맞춤해설을 해줄 사람을 만나기도 어렵고, 대화의 역동성에 의해 서로를 존중하다보면 문제를 다 해결안하고 대화가 끝나기도 하죠.

스스로 사고하는 블로깅이라는 말을 들으면 일반적으로는 도움되는 말이겠다고 이해를 하지만, 뭔가 기분이 나쁜 일과 관련성이 주어지거나, 블로깅에 뭔가 난항이 있게 되면 비하처럼도 들립니다. 블로깅을 어느 정도 하는 저도 지금의 글쓰기를 2005년부터 본격 가동하기 시작했는데요. 나름 초등학생때 공부좀 한다고 칭찬도 받고 언어에 대한 감각이 조금 강해서 삶의 부침이 있게 된 이후에도 공부 재개를 하니 지금처럼 노하우 전수를 하는데 흥미가 강하게 지속됩니다.

눈썰미라고 부르는 것은 연습하면 다들 강해집니다. 스키마타가 유난히 실패의 경험으로만 채워져 있지 않으면 다들 잘하게 됩니다. 중요한 것은 자기 상황에 맞는 맞춤형 해설인데, 이경우에도 조금 더 잘하려면 맞춤해설이 아니더라도 이해가 트이는 노하우네요.

이 경우에 해볼 수 있는 말은 공부를 할때 표현을 너무 정확하게 생각하지 말라는 말이 있는데요. 예를 들면 “뇌의 전전두엽은 통제적 사고를 담당한다”라는 말을 주제로 공부한다고 해봅시다. 이 경우에 전전두엽이 어디에 있는 뇌의 부위인지 아는 분들은 통제적 사고에 대한 이행으로 이어질 학습 단계로 이행합니다. 이때 저 표현을 너무 정확하게 생각하다보면 “전전두엽은 공감적 사고를 담당한다”라는 말을 접하기전에는 전전두엽의 유일한 기능이라고 여기는 경우도 있게 되네요. 이 경우에 이를 넘어서려면 눈썰미가 중요한데요. 우선 많이 알아야 하고, 권위를 너무 믿기보다 평소의 자기 생각을 구체화하려고 공부해야 하구요. 한 표현에 결부된 여러 의미와 상황, 인과, 시간 등의 지식이 많을수록 눈썰미가 좋아져서 블로깅도 자기주도적으로 하게 되네요.

위에서 “통제적 사고”와 “공감적 사고”라고 할때도 개인마다 다르게 느끼는데, 철수는 “통제적인 것을 자제하고 공감적으로 배려한다”라고 느끼고 공부를 이행하기도 하고 만수는 “통제적으로 해야 공감적이 된다”라고 느끼고 공부를 이행하기도 하는데 이는 둘다 옳을 수 있네요. 카솟하면서 총쏴서 이기고 힐링했다는 사고를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경우에는 이를 공감만 강조하면 안되는 상황조건이고,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켰을때 사정을 참작하고 관용하는 것은 통제와 공감이 둘다 참인 상황조건이니까요.

철학적으로 보면 배중률이나 불문율이라는 도덕 법칙이 있는데요. 논리학이나 윤리학에서 나오는데 이는 이 자체로 완전하게 늘 성립하는게 아님을 누구나 직감하기에, 구체화하는 눈썰미가 중요합니다. 결과주의라는 윤리학 입장을 보면 담배가 건강에 나쁘지만, 담배 연기가 흩날려도 금연석에서 하면서 밀폐하면 흡연이 나쁜게 아니듯이 “이러이러한 잘못을 했으니 결과적으로 나쁘다”와 “이러이러한 과정으로 어려움을 경험했으니 결과적으로 좋다”와 같이 표현을 보면 확 느껴지는 느낌을 넘어선 사고를 잘하면 블로그도 잘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즉 배중률은 다치논리에 의해 대체될 수 있고, 불문율은 악법은 법이 아니라는 직관적인 동기로도 비판할 수 있는 논거가 존재합니다. 이를 잘 하고 허용받으려면 물론 평소에 마음이 밝고 맑아야 되긴 합니다.

이를 응용하면 사회적인 상식이 게이들에게 안좋았을때와 요즘처럼 게이들도 존중받는 때의 간격에 대해서도 사고가 가능해지는데요. 이를 잘 전유해서 자기 체계에 받아들일때의 능력도 그전에 접해본 여러 지식들에 대한 눈썰미네요.

인지과학자들이 말하는 메타인지도 같은 맥락입니다. 상식을 넘어서서 공공선을 지키고 자기주도적으로 글감을 찾아 쓰고 이를 토대로 타인과 영향을 주고 받는 것이 좋은 블로깅 같애요. 메타인지가 되면 혼란스럽거나 슬픈 일이 있어도 차분하게 대응도 되구요. 물론 한계 상황이 엄청나면 예외입니다.

표현 그 너머를 구체화하는 방법이 중요합니다. 부호화와 복호화를 잘할때의 한 통로가 잘 보는 것 즉 눈썰미네요.

평소에 철학서를 보고 논의되는 것에 대해 뭔가 강한 임팩트를 느꼈는데 이경우에 뭔가 느낌은 오는데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때가 있습니다. 이경우 말못함만 인식하면 자괴감이 들고 공부를 중단하기도 하는데요. 그래도 괜찮습니다. 철학서에서 나온 것을 다 인식할 수 없어도 또는 언어로 표현이 안되도, 또는 블로그 글이 전개가 안되도 그것은 좋은 글로 나아갈 전거입니다. 못함을 알아서가 아니라, 마이클 폴라니가 말하듯 암묵지가 되는 것이구요. 비명제적 지식으로 가능할 것입니다. 즉 언어로 구체화가 안되어 인지적으로 쓸모가 안찾아지지만, 인식속에 남아서 표현을 획득할때, 각자의 노하우가 발현된 암묵적인 지식이라는 것이죠.

그러니, 표현을 대할때 표현을 정확하게 보기보다 표현에 연합된 내포를 보는 것도 블로깅할때 좋은 태도일 수 있네요.

다른 글에서 말한 친구와 함께 식사하러 가고 싶어 전화를 할때도

친구 = 친한 사람 = 심심할때 같이 놀아주는 사람 = 고마운 사람
심심할때 놀아주기 = 음식 나누기 = 소주와 삼겹살 = 식당 리뷰
식당 리뷰 = 친절하게 해주는 사장님의 터치 = 음식의 맛과 분위기

라고 상세하게 공부하는 것은 일차적으로는 문제가 아닙니다. 마케팅하는 분들이나 심리학자들, 자기개발 선생님들, 그외 학자분들은 잘 하시는 것이죠. 이보다 공부 단계가 있어서 이를 지킨다면 일상에서도 눈썰미 있게 현상을 보고 부호화화 복호화를 하는 나름의 공공적인 노하우가 있으면 좋죠. 위의 분석을 할때 전전두엽의 통제적 사고 방식으로 공감적 해석을 하면서 친구들에게 보탬이 되도록 실천하면 됩니다.

우리가 철학을 안해도 친구들과 만나면 덕담도 해주고 상담도 해주잖아요. 이를 학문에다가도 연장하면 됩니다.

블로깅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눈썰미(부호화, 복호화, 전전두엽과 협연하는 뇌의 특징)가 좋게 되려고 연습하면 다들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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